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리니티 실험 (문단 편집) == 폭발 == ||<-2> '''트리니티 실험''' || || '''실험 날짜''' ||1945년 7월 16일 5시 29분 45초|| || '''실험 장소''' ||뉴멕시코 앨러모고도|| || '''사용한 폭탄''' ||가젯(Gadget)|| || '''예상 위력''' ||0~45㏏|| || '''실제 위력''' ||25㏏|| || '''폭탄 종류''' ||[[플루토늄]] 내폭형 핵무기|| || '''고도''' ||지상. 30m 철탑|| 7월 14일, 실험 이틀 전 30m 높이의 철탑 꼭대기에 가젯을 설치하는 작업이 끝났고, 16일 오전 4시에 실시될 실험을 위한 막바지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15일 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 다음날 오전 4시가 다 되도록 줄기차게 내린 덕에 실험은 연기되었다. 비가 내릴 때 실험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시야가 줄어 육안관측이 힘들어지고 낙진이 쓸려 떨어지면서 좁은 지역에 집중되어 위험 수준까지 농축될 수 있으며, 각종 전자장비가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4시에 비가 그치고, 4시 45분 문제가 없다는 기상예보가 나오면서 실험 시각은 5시 30분으로 재조정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rinity_shot_color.jpg]] 그리고 5시 29분 45초,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인공 핵 폭발'''이 일어났다. 실험은 성공적이었고, TNT 20㏏의 위력을 가진 것으로 측정되었다. 강렬한 빛이 수 ㎞ 떨어진 산을 낮보다 환하게 비췄고 16㎞ 떨어진 본부에서도 오븐처럼 강렬한 열이 느껴졌다. [[버섯구름]]은 12㎞ 높이까지 솟아올랐으며, 40㎞가 넘는 곳에서도 화구를 관측할 수 있었다. 240㎞ 거리에 있던 사람도 태양과 같은 밝은 빛이 하늘을 환하게 물들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 3㎞ 밖에 있던 한 폐가는 부서져 버렸으며, 충격파는 160㎞ 거리에 서 있는 사람에게 느껴질 정도였다. [[파일:external/nuclearweaponarchive.org/Trinity6-18MS320c10.jpg]] 각각 폭발 6, 16, 18 밀리초 후 모습 || [[파일:Trinitite-sample.jpg|width=100%]] || || 실험 이후 주변에서 발견된 트리니타이트. || 실험 직후 폭심지를 조사하기 위해 측정장비를 탑재한 [[M4 셔먼]] 전차가 출발하였다. 물론 방사선을 막기 위해 총 12톤 가량의 납을 2인치 두께로 펼쳐 덮는 개조를 거친 물건. 탐사 결과 폭심지 부근에는 직경 340m에 이르는 구덩이 전체가 [[유리화|강렬한 열로 인해 모래가 녹아 옅은 녹색의 방사능 유리로]] 덮여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광석은 실험명을 따서 트리니타이트(Trinitite)라고 이름지어졌다. 1948년에야 학계에 보고 되었으며, 2000년대에서야 정확하겐 폭심지의 열구와 함께 모래가 함께 올라갔다가 초고온고압의 상태를 체험하고 액체 상태로 떨어졌다는 이론이 등장했다. 그래서 색깔이 다른 것도 있으며, 2021년에는 운석의 텍타이트에서만 보이는 단결정이 빨간색 트리니타이트[* 초록색만 있는게 아니라, 빨간색, 검은색 트리니타이트도 존재한다.]에서 관찰되기도 하였다. 그 후 미국 정부에서는 이 트리니타이트를 정부 재산으로 취급하고 개인이 가져가는걸 금지시켰다. 그러나, 수집가들이 45~46년 경에 와장창 퍼간 건 합법적으로 잘 팔리고 있다. 그렇지만 양은 레어한 편. 당시 미국 원자력 위원회, 현 [[미국 에너지부]]가 이 트리니타이트 구덩이를 1953년에 메워버렸기 때문이다. 진품의 경우, [[감마선]] 분광을 이용하면 ^^137^^[[세슘|Cs]]과 ^^241^^[[아메리슘|Am]] 지문이 또렷히 나타난다. 하지만 짭이냐 진품이냐를 따질려면 눈과 가이거 계수기가 아닌 더 과학적인, 위에서 말한 감마선 분광법같은 것을 사용해야 한다. 여튼 사진은 진품으로, 약 1㎝ 크기이다. 당연히 [[핵실험]]을 했으니 위에서 설명했듯이 [[방사성 동위원소]]가 남아있지만, 76년이 다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60^^[[코발트|Co]]는 아예 반감기로 사라져서 안전하다. [[SETI 프로젝트]]에서도 탐내는 물건으로, '치명적인 위협과 생존전략'에 대한 침묵의 라이브러리 소장품으로 집어넣는다고 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rinity_crater.jpg|width=100%]] 실험 28시간 후 모습. 오른쪽 아래에 동심원이 그려진 채로 있는 작은 검은색 얼룩이 100t 실험으로 인한 크레이터이다. 이러한 소식은 뉴멕시코 전역에 떠들썩하게 퍼졌지만, 정부의 공식 답변은 앨러모고도 공군 기지의 무인 탄약 창고가 폭발했으나 사상자는 없다는 짧은 언급 뿐이었다. 미국 동부 지역에서는 아예 화제조차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된 것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히로시마에 폭탄이 떨어진]] 뒤였다.[* 물론 이때 방출된 방사능 물질이 [[코닥]]의 X레이 감광필름 공장을 오염시키는 바람에 코닥에서 일하던 줄리안 웹(Julian Webb)처럼 [[https://www.youtube.com/watch?v=7pSqk-XV2QM|진실을 알고 있던]] 사람도 있었다.] [[파일:external/nuclearweaponarchive.org/Oppgrov2big.jpg|width=100%]] 실험 후에 바닥의 뼈대 일부만 남은 30m 높이의 철탑. 왼쪽의 사람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오른쪽의 사람은 맨해튼 계획의 총책임자 [[레슬리 그로브스]]이다. 실험 2달 후에 찍은 사진. 현대에는 실험 현장엔 이 실험을 기념하는 작은 기념탑이 있다. [[https://www.google.com/maps/search/Trinity+nuke/@33.6772252,-106.4754429,49m/data=!3m1!1e3|구글 지도 링크]] 현장은 방사능 문제로 방문이 허용됐다 금지됐다를 반복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